004. [ Transilvanian Party: A Salute to Geum-ho Dong ] | 1996, 퍼포먼스, 김준수 사진

005. [ Transilvanian Party: A Salute to Geum-ho Dong ] | 1996, 퍼포먼스, 김준수 사진

006. [ Transilvanian Party: A Salute to Geum-ho Dong ] | 1996, 퍼포먼스, 김준수 사진

007. [ Transilvanian Party: A Salute to Geum-ho Dong ] | 1996, 퍼포먼스, 김준수 사진

008. [ Transilvanian Party: A Salute to Geum-ho Dong ] | 1996, 퍼포먼스, 김준수 사진

009. [ Transilvanian Party: A Salute to Geum-ho Dong ] | 1996, 퍼포먼스, 김준수 사진

010. [ Transilvanian Party: A Salute to Geum-ho Dong ] | 1996, 퍼포먼스, 김준수 사진

011. [ Transilvanian Party: A Salute to Geum-ho Dong ] | 1996, 퍼포먼스, 김준수 사진

012. [ Transilvanian Party: A Salute to Geum-ho Dong ] | 1996, 퍼포먼스, 김준수 사진

013. [ Transilvanian Party: A Salute to Geum-ho Dong ] | 1996, 퍼포먼스, 박수성 사진

014. [ Transilvanian Party: A Salute to Geum-ho Dong ] | 1996, 관련 신문기사

 

한참 동성애자인권운동이 뜨거운 이슈였던 1996년 가을, 나는 얼떨결에 살에서 전시회를 열게 되었다. 별로 진지하지 않았던 나는, 역시 별로 진지하지 않게 작업했다. (당시 전시는 이동기씨와의 2인전이었는데, 정작 나는 그와 말 한마디 나누지 않았다. 12번 사진을 보니 그는 가장 좋은 자리에 앉아 퍼포먼스를 보고 있다.) 살이라는 공간이 가진 '쌈마이'적인 성격이 거슬렸던 나는 싸구려 깜박이 전구들을 늘어뜨려 살을 저급 홍등가로 치환했다. 사람들이 그렇게 독해하길 바랬던 것이 아니다. 그저 나는 내가 전시하는 동안, 살이라는 너무나 최정화적인 공간을 나 자신에게 좀더 편안한 공간으로 바꾸고싶었을 뿐이었다. (전구들은 전시가 끝나기도 전에 최정화에 의해 철거-재설치되었다. 나는 황당했지만, 작업의 주체가 뒤바뀌는 상황이 흥미로워 그대로 두었다.)

10월 12일에 퍼포먼스를 가졌는데, 내용은 개인적인 것이었지만, 사람들은 사회 계몽적인 것으로 받아들였다. <Playing Dali; L.H.O.O.Q.>의 연장선에 선 이 작업은, 어느 게이바에서 있었던 끔찍한 사건에 대한 소문을 소재로 한 것이다. 자지를 도려내면 상처에서 보지가 솟을 것이라 믿었던 한 어린이의 판타지와 게이 사회에 떠돌던 흉악스런 사건에 대한 소문을 뒤섞어 만든 이 퍼포먼스에서, 여자 관객들은 수염을 그려야 입장할 수 있었고, 남자관객들은 메이크업을 해야 입장할 수 있었다. 당시에도 눈치 빠른 사람들은 알았겠지만, 수염은 뒤샹의 "L.H.O.O.Q."를 환기시키는 장치였지 '남장'을 뜻하는 것은 아니었다.

별다른 홍보를 하지 않았음에도, 퍼포먼스 당일엔 많은 사람들이 몰려 사건사고가 많았다. 수십 명이 입장하지 못하고 돌아갔으며, 바에 몰린 사람들이 물을 엎질러 앰프가 고장나는 바람에 다른 클럽에서 앰프를 빌어와야 했다. 내 작업은 동아TV 등 케이블 TV와 스포츠 신문을 통해 보도되었지만 미술잡지에서는 언급도 하지 않았다. 또한 입구에 설치한 작업은 발기한 성기 이미지가 '외설적'이라는 이유로 어떤 주말 손님의 손에 의해 파손, 철거되는 곤욕을 치렀고, 전시된 텍스트 작업 가운데 하나는 후일 어느 영화 감독에게 도용되기도 했지만, 나는 별로 개의치 않았다. '작가'라는 제도적인 자의식이 없었기 때문이다.